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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3일 일요일

자연해설/다랭이 논(내제리 144지번 ~ 196지번)

당지마을
다랭이 논(내제리 144지번 ~ 196지번)


다랭이 논이란 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하여 층층이 만든 계단식 논을 말합니다, 지형에 맞춰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논이 반복되어 리듬감을 주는 형식입니다.

의령군에서는 낙서면의 다랭이논이 유명합니다.
의령군 낙서면 다랭이 논은 긴 골을 따라 만들어져 있으며 주변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다랭이 논은 비가 오면 층을 이루며 물이 차오르고 빠지는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가뭄과 여름의 홍수를 겪는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물 관리 기술을 자연스럽게 터득하였습니다. 강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다랭이논은 턱을 높여 빗물을 고이게 하였고 담을 수 없는 빗물의 양은 계단식의 구조로 인해 밑으로 물을 보내게 하였습니다. 이렇듯 빗물을 받아쓰는 방식으로 선인들은 물 부족을 자연스럽게 해결하였습니다. 또한 다랭이논으로 탄산가스를 흡입하며 대기를 정화하고 지하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낙서면 안내 

주요 특산물
- 찰 옥수수, 단 옥수수, 초당 옥수수 : 수확시기 (5월 ~ 9월)
- 양상추 : 수확시기 (12월, 3월, 4월)
- 단감, 대봉감 : 수확시기 (10월, 11월)
- 기타 마늘, 양파, 오이, 수박 생산

주요 편의시설
연화동복지센터 : 055-572-8606
식당, 게스트하우스, 까페 

여의보건지소 :  055-570-4706
노인인구를 위해 농촌 의료환경 개선사업으로 2006년 보건지소 및 보건진료소를 증·개축했습니다.

호랑이 바위 | 연화동권역 19번

낙동강 너머에 사는 호랑이 대장 부부는 전국에서 가장 맛있다는 농산물을 훔쳐 먹는 나쁜 호랑이 부부였습니다.

감곡마을 일대에서 생산되는 감이 전국에서 제일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강을 건너 감곡마을로 숨어 들어와 감을 훔쳐먹고, 감나무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 마을의 임비장군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호랑이를 물리치기로 하고 호랑이 부부가 들어온 길목을 막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가 부른 호랑이 부부는 돌아가려고 강 가로 나왔지만 돌아갈 길목은 이미 막혀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길을 찾아 헤엄을 쳤지만 한 발자국도 못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임비장군은 호랑이들에게 호통을 쳐서 꾸짖었고, 죽음을 맞으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호랑이들은 죽어서라도 잘못을 갚겠다고 말하고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호랑이 부부가 죽고 나서 감곡마을 사람들에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감곡마을에서 판사, 학교장, 교수, 그리고 경찰 등의 인물이 난 것이 호랑이바위 덕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호랑이바위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감곡마을에는 유명 방송에 16회 출연한 당마늘과 마늘차를 개발한 성의정 연화동 추진위원장과 할머니 스타인 전복윤, 박정기, 곽옥이, 이성록, 성정자 할머니 5인방이 살고 계십니다.








자연해설/임비장군묘(내제리 120-1)

당지마을
임비장군묘(내제리 120-1)

대장군 임비(林庇)공이 고려의 충열왕이 아직 세자로 있을 때 원(元)나라와 화의(和議)를 위해 갈 때 호종하고 갔다가 돌아오고 있을 때였습니다. 임연(林衍)등이 원종(元宗)을 폐하고 동생인 안경공(安慶公)을 왕으로 옹립하였습니다. 이를 알게 된 세자 일행은 원으로 돌아가 원 황제 세조(世祖)의 힘으로 원종이 복위되고, 귀국하여 세자는 1274년 고려 제25대 충렬왕이 되었습니다.
원과 화의할 무렵 혼란기와 무인(武人)의 오랜 세도를 종식시키고 왕권을 회복하는데 끝 까지 충열왕을 시종보좌(侍從輔佐)한 대장군 임비(林庇)공은 그 공로로 1281년 2등공신이 추록되어 토지와 하인, 철권을 하사받았습니다.
벼슬은 대장군 충청도도지휘사판사재시사(大將軍忠淸道都指揮使判司宰寺事)에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주임씨는 선세(先世)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대장군 임비(林庇) 위로 여러 대(代) 높은 벼슬을 지낸 분이 여러분 있었다는데, 세대가 아주 멀고 문적을 증거 할수없어 지금 상고해서 밝힐 수가 없으므로 맨머리에 오르는 할아버지에게 시(始)자를 쓰는 것이 죄송할 것 같아 족보예규를 참고하여 고려 충렬왕(忠烈王)시절 대장군을 지낸 임비(林庇)공을 원조(遠祖)로 하고 있다.

낙서면 안내 

주요 특산물
- 찰 옥수수, 단 옥수수, 초당 옥수수 : 수확시기 (5월 ~ 9월)
- 양상추 : 수확시기 (12월, 3월, 4월)
- 단감, 대봉감 : 수확시기 (10월, 11월)
- 기타 마늘, 양파, 오이, 수박 생산

주요 편의시설
연화동복지센터 : 055-572-8606
식당, 게스트하우스, 까페 

여의보건지소 :  055-570-4706
노인인구를 위해 농촌 의료환경 개선사업으로 2006년 보건지소 및 보건진료소를 증·개축했습니다.

자연해설/이조참판 진양강씨 무덤(여의리 51)

당지마을
이조참판 진양강씨 무덤(여의리 51)

가선대부 병조참의 한사 강공 휘 대수지묘비

휘는 대수요, 자는 학안이요, 성은 강씨입니다. 고려태자 민첨의 후손입니다.
20세에 국자시에 뽑혔고, 3년 임자에 과거에 급제하여 참의까지 관직을 거쳤습니다.
만년에는 스스로 호를 한사만은이라 하고 주양 읽기를 좋아하여 날마다 한 괘씩을 외워 잠잠히 공부하였고 석천서재를 지어 학자들을 기다렸으며 같은 고을에 이연서원을 세우고 의령에 덕곡서원을 세워 유자들의 사업을 돌보았습니다.


자헌대부 증 예조판서 당암 강공 휘 익문 지묘비

묘갈명병서, 공의 휘는 익문이요, 자는 군우요, 당암이요, 성은 강씨니 본래 진양 사람입니다.
공은 젊어서는 사시로 명예를 이루다가 22세인 기축에 진사가 되고, 39세에 병오에 증광시에 급제했으며 무신에 성균학론로서 시강원 설서를 겸했으며 예조판서까지 승진하였습니다.
평생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 좋은 몸이 편한 것을 취할 뿐이요, 음식은 입에 맞는 것을 취할 뿐이었습니다.
성격이 진실하고 삼가하여 외포를 일삼지 않았으며 사람과 사귀는데 밖으로 나타내는 일이 없어 남이 옳지 않은 일을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옳지 않은 자는 기뻐하지 않는 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낙서면 안내 

주요 특산물
- 찰 옥수수, 단 옥수수, 초당 옥수수 : 수확시기 (5월 ~ 9월)
- 양상추 : 수확시기 (12월, 3월, 4월)
- 단감, 대봉감 : 수확시기 (10월, 11월)
- 기타 마늘, 양파, 오이, 수박 생산

주요 편의시설
연화동복지센터 : 055-572-8606
식당, 게스트하우스, 까페 

여의보건지소 :  055-570-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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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지마을/이감사묘(여의리 58)

당지마을
이감사묘(여의리 58)

이감사묘는 조선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 광주 이원록지묘라 되어 있습니다.
구 비석은 갓 없는  비석이며, 비의 높이는 120cm, 폭 45cm, 두께 18cm입니다.

현재는 구 비석의 글귀가 마모되어 새 비석을 세워 놓았습니다.
이감사묘로 불리우는 이 묘소는 비룡상천의 대명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원록공은 자가사홍 호는 박곡으로 대사헌을 지냈습니다.

대사헌이란?
 사헌부란 정사를 토론하고 백관을 규찰하며 풍속을 바로잡고 억울한 사정을 풀어주며 협잡행위를 단속하는 등의 기능을 했던 기구이다. 이것은 중국의 어사대부(御史大夫)·어사대(御史臺)에서 유래하였다.  현재의 검찰에 가까운 기구라고 할 수 있다. 사헌부의 수장은 종2품 대사헌으로 대헌(大憲)이라고도 하는데 현재의 검찰총장격이며 사헌부 관리를 대관이라고 한다.

 길에서 대관을 보면 왕족 대신이 먼저 피해간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위세는 대단했다고 한다. 국왕에 맞서 탄핵하과 간쟁한 결과였다. 대관들은 다른 관리들이 모두 나간뒤에야 나가는 처신으로 청탁을 물리치고 엄격한 자기절제와 추상같은 자세로 민초들로 하여금 사헌부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만들었다.





자연해설/강변여과수(여의리 307)

당지마을
강변여과수(여의리 307)

의령군은 의령 동부지역 5개면(낙서면, 지정면, 궁류면, 유곡면, 정곡면) 주민에게 맑고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동부권 지방상수도 설치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동부권 지방상수도 설치사업」은 낙후지역 주민들이 현재 이용하고 있는 소규모 수도시설(마을상수도 및 소규모 급수시설)의 수원부족 및 수질불량 등으로 인한 주민불편 해소를 위한 의령군의 역점시책입니다.

이 사업은 낙서면 여의리 낙동강 변에 지름 7.4m, 높이 30m 가량의 거대한 원형 집수정을 매설, 모래를 통해 자연 여과된 깨끗한 원수를 수원으로 정수능력 3000톤/일 규모의 정수장 및 송수관로를 설치하는 「의령군 강변여과수 개발사업」의 후속사업입니다.



낙서면 안내 

주요 특산물
- 찰 옥수수, 단 옥수수, 초당 옥수수 : 수확시기 (5월 ~ 9월)
- 양상추 : 수확시기 (12월, 3월, 4월)
- 단감, 대봉감 : 수확시기 (10월, 11월)
- 기타 마늘, 양파, 오이, 수박 생산

주요 편의시설
연화동복지센터 : 055-572-8606
식당, 게스트하우스, 까페 

여의보건지소 :  055-570-4706
노인인구를 위해 농촌 의료환경 개선사업으로 2006년 보건지소 및 보건진료소를 증·개축했습니다.


자연해설/근수정(여의리 2-9)

여의마을
근수정(여의리 2-9)

의령군 낙서면 여의리에 있는 근수정은 서흥김씨 종족의 강학소이다.
근수정(近水亭)은 서흥 김씨 재실겸 정자인데 오래되어서 중건했습니다.


자연해설/모래사장(여의리 454)

여의마을
모래사장(여의리 454)


의령에서 발원한 신반천이 유입되는 지역도 대부분 골재채취로 인해 하천이 마치 운동장처럼 단순하게 변형된 지역입니다. 모래사장에 남아있는 새들의 발자국도, 개와 너구리의 발자국 기록도 얼마 없더군요. 다만 모래사장에는 물레 밀려온 잡목을 중심으로 너구리의 발자국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넓은 강변을 돌아다녀보아도, 구미 해평습지처럼 모래사장에 흔하디 흔하게 남아 있을 철새들의 배설물 하나 없이 어디서 온지 모를 골프공 하나만 주인 행세를 하며 모래사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의나루터 | 연화동권역 14번


여의마을
여의나루터(여의리 454)


단감 농사로 유명한 낙서면 여의마을 제방 너머에 여의나루터가 있었습니다. 낙동강이 감아도는 여의 나루터는 예전에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이 있어서 모래찜질 장소로 유명하였습니다. 
 
현재는 큰 홍수로 인해 언덕과 골이 생겨 강이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여의나루에서는 가을부터 살얼음이 얼기 전까지 200년 전통의 참숭어를 잡이가 이어졌다고 합니다.참숭어는 산란을 위해 얕은 물가로 올라오는데 이때가 가장 맛있는 철이라고 합니다.
현재 여의 마을의 유일한 기술 보유자가 마을 청년에게 기술을 전수하였다고 합니다.
맑은 강가에서 이루어지는 참숭어 잡이는 여의나루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행사였습니다. 현재는 환경적 변화로 인하여 참숭어 잡이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전 숭어잡이 모습



홍정표 할아버지 숭어잡이 이야기 


숭어라 카는 거는 원래 바닷고기거든 봄되면 올라와 
바닷물하고 민물하고 차이가 있는데 이곳에 올라오면 살이쪄... 
낙동강이 얼어버리면 숭어가 죽어버려 
그래서 바다로 갈때 그때 숭어잡이를 해 
말목을 7m 마다 하나씩 박아서 써 
예전에는 나이롱 끈이 없어서 새끼를 엮어서 사용했어 

물이 깊으면 잡지 못하거든 
중간 중간에 대를 꽂는데 밑에 그물코를 걸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 
그리고 그물은 실그물을 써야해 

그물로 강물을 쫙 막카놓으면 실그물은 잘 안보이거든 

강물이 알로 흐르그든 
아래로 내려오는 놈들이 그물을 피해서 한 쪽으로 모이거거야
겁이나서 못내려가는 놈들이 깔데기 처럼 모여있다가 온동 그물이니까 위로 뛰어서 숭어가 지가 뛰어서 우물로 만들어 놓은 곳에 담키는 기야 
예전에 배우면서도 예전에 예전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생각했나 하고 생각해 숭어뿐만 아니라 잉어도 잡혀 

숭어잡이할때는 밤도 낮도 없어 계속 잡하야해 
숭어는 가을에 한 한 달 정도 했지 입동지나면 겨울이거든 하루에 한차까지도 잡았어. 계속 퍼담아야해 
많을 때는 밤새 잠 못자 계속 퍼내야해. 

기술은 배웠다기 보다는 같이 하면서 보면서 배웠어. 
재수가 있어서 그런가 기술이 있어서 그런가 잘 잡혔어. 

미칠 있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적도 있어  
요즘에는 여울이 안생겨서 숭어잡이는 못해 


나룻배 이야기 

예전에 나룻배도 운영하셨다고 하셨는데요?. 

그렇지 내가 배를 만들어서 책임을 지고 사람들 건너줬지. 

예전에는 낙서면 사람들은 강을 건너서 장을 이용했어. 
예전에 장이 자그마했는데 좋았지. 
근 40년 정도 했지. 
부산에서 배를 만들거든 아침에 일찍 올라와도 하루가 지나도 못올라와 여울지는 곳에 들어가면 너무 심들지 내가 대구 근처 위천부터 부산까지 왔다갔다 한적도 있지. 볼일 있으면 어디든 갔어. 
많이 
내맘대로 내배니끼니 그냥 다녔지 

내가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나룻배 운전했지. 
어른들 멀리가고 나면 내가 몰고 했지. 
한국전쟁 날때 초등학교 3학년이었거든. 다른곳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이곳에 와서 살았어 내나이가 76이니까. 오래전이야

이제 나룻배도 숭어잡이도 할 수 없어...


자연해설/국사당

여의마을
국사당

국사당은 여의리에 있는 산입니다.
당산이 있으며, 동신제를 지내던 산입니다.
여의 마을 뒷산에는 널찍한 뻔덕에 큰 고분이 있으며, 옛날 큰 벼슬한 사람이 살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의마을은 원래 지명이 <연늪>이었고 낙동강변 마을이라 큰 나루터가 있어서 <연늪나리>로 통했습니다.
옛날 강변 제방이 없던 시절에는 온통 수침지역이었고 군데군데 늪이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늪에는 연 종류의 다년생 수초가 많이 자생했고 한여름동안 화사한 연꽃이 지천이었음을 짐작 할 때 연꽃이 가득한 늪마을,연꽃동네라서<연늪>이란 소지명을 사용되었습니다. 

낙서면 안내 

주요 특산물
- 찰 옥수수, 단 옥수수, 초당 옥수수 : 수확시기 (5월 ~ 9월)
- 양상추 : 수확시기 (12월, 3월, 4월)
- 단감, 대봉감 : 수확시기 (10월, 11월)
- 기타 마늘, 양파, 오이, 수박 생산

주요 편의시설
연화동복지센터 : 055-572-8606
식당, 게스트하우스, 까페 

여의보건지소 :  055-570-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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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해설/이동주무덤과 진사고개(아근리 368)

상포마을
이동주무덤과 신고개(아근리 368)

마을뒤 나직한 고개가 웃개고개로 삼포로 통하는 산고개인데 산중턱에 몽헌이동주공(진사)의 묘소가 있어서 흔히「진사꼬」(진사고개)로 부릅니다. 여기에 1628년 인조 6년 출생한 몽헌 이동주 묘소가 있습니다.
몽헌 이동주는 중국과 우리나라 유명한 선현들이 남긴글을 모아 ‘행학절요’란 수신서를 편찬한 큰 학자입니다.
자는 인로요, 호는 몽헌입니다. 






헌 이동주는 인조(仁祖) 6년 무진(戊辰 1628) 12월 12일 생이며 현종(顯宗) 10년 기유(己酉 1669)에 생원(生員)에 합격하였고 학문(學文)이 뛰어나 유고(遺稿)가 있으며 숙종(肅宗) 32년 병술(丙戌 1706) 3월 17일 졸(卒)했다.
일찍이 송.명 나라로부터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어진 분들의 격언지론을 편집하여 ‘행학절요(行學切要)’를 집성하였다. 이 책은 학자들에게 필요한 행동규범 가운데서 가장 긴요한 말들을 수집해놓은 것이다.

몽헌유고(夢軒遺稿) _ 이동주 시문집
시는 자연에 묻혀 한가하게 살면서 느낀 감회와 학문의 즐거움을 읊은 내용들이 많다. 

서(書) 중 문인 권수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학문하는 의미와 방법을 절실하게 일러주고 있다.



자연해설/효자각(아근리 481)

상포마을
효자각(아근리 481)



효자빈공정려비. 孝子賓公旌閭碑는 낙서면 아근리 상포마을 입구에 있다. 이 碑는 조선 정조 때 이 마을에 살던 賓世興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내려진 것으로 정려각인 효자각내에 있다. 빈세흥의 자는 善汝, 호는 百和堂으로 1703년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침저녁으로 부모님께 문안인사 드리는 것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으며, 늘 부모에게 정성을 다해 공양하면서도 언제나 부모를 흡족하게 해 드리지 못함을 한탄하였다고 한다. 부친상을 당한 후 죽으로 연명하면서 삼년시묘살이를 치뤘다. 이에 그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童蒙敎官 朝奉大夫로 증직되고 정려가 내려졌다.비각은 정면 1,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와가이다. 시멘트 지정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원형 기둥을 세웠다. 전면에 홍살과 출입구를 내어 개방하였고, 나머지는 회벽으로 마감하였다. 단청은 무늬 없이 단색으로 칠한 가칠단청으로 처리하였다. 구조는 민도리 형식의 3량가로 겹처마로 구성되어 있고, 보 머리는 직절하였으며, 보 위에 동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종도리는 치목을납도리를 사용하였다. 현재 기와가 많이 퇴락하였으며, 지붕면에 잡풀이 자라고, 일부가 파손되어 보수가 시급한 실정이다.가로 45cm, 세로 120cm, 18cm.宜寧文化院, 2000,『宜寧忠孝烈錄


자연해설/샛강/쌍둥이바위(아근리 127)

상포마을
샛강/쌍둥이바위(아근리 127)



상포마을

면소재지에서 채 닿기 전 <오오티고개> 밑에서 북동쪽 산길로 십리는더 된다. 산등성이 고갯길로 한참 가면 이진사<몽헌 이동주님>의 무덤이 있다해서 <진사꼬> 라 부르는 산고개가 있다. 거기서 보면 마을이 보이는데 큰 강을 끼고 있는 갯마을로 양지편과 응달뜸으로 나누어져있다. 마을 앞이 바로 낙동강이고 옆으로 흐르는 작은 강을 <샛강(사이강)>이라 한다. 서북쪽으로 적포나루와 긴 철교가 보이고 강 건너는 창녕땅이다. <웃게>란 지명은 한자의 훈을 따서 부르는 말이다.

上(웃상, 윗상), 浦(개포, 물가포) 그대로인 셈이고 옛 문헌에는 이곳을 <우질포>라 돼 있다. 부림면에서 동으로 시오리 지점인데 세간천과 낙동(낙동강을 낙강이라고도함)이 합류하는 곳이라고 적혀 있으니 상포또는 상포진이란 지명은 훨씬 뒤에 쓰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창녕.대구 합천지방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정면 성산을 기준으로 보면 의령지역 나루터로는 가장 위에 위치하는 곳이라<웃개> 즉 가장 위(상류쪽)의 나루라 부르게 된 것이다. 골안에 마을이 형성돼 있는데 양지편, 음지편으로 뜸이 나누어진다. 양지편 뒤를 막고 있는 산이 <부엉등>인데 옛날에 부엉이 (목토,치효)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음달뜸 뒤로는 나지막한 고개라서<나질고개(나직고개)>와 갈나무(떡갈나무)가 많아서 <갈고개(갈꼬)>란 산고개가 있는데 요즘도 사람들이 이용하는 지름잿길이란다. 재 하나를 넘으면 <아근>마을과 <가래실>이다. 산골짜기 다락논이 있고 물길이 좋다는 <논골>,높은 덤이 양쪽으로 갈라져 방아의 디딜가지 모양이라고 <방아덤>,산도(육지)밭이 있어<산도밭골>, 샛강옆에 열길도 더 되는 덤 중간에 은동이가 박혀 있다는 <은동오덤> 도 유명하다. 시렁처럼 높고 긴 논배미라고<살랑담> 등 재미있는 지명들이 남아 쓰이고 있었다. 낙동 물가운데 잠겨있는 쌍둥이 바위는 가뭄때만 볼 수 있는데 짐승뿔 같아서 <불시덤>으로 부른다. 광복후 전국적으로 이름났던 특산물<상포마늘>은 어른 주먹만한 대산(大蒜)이었는데 입고병 때문에 몇 해 못넘기고 망해 버렸다고 한다.

자연해설/섬뜽(낙서면 정곡리 156)

신기마을
섬뜽(낙서면 정곡리 156)

자연해설/큰바위/작은바위(정곡리 1336)

정곡마을
자연해설/큰바위/작은바위(정곡리 1336)

자연해설/송덕비(정곡리 589-11),

정곡마을
자연해설/송덕비(정곡리 589-11),

의령 변형규공 시혜비각
(宜寧 卞炯圭公 施惠碑閣)



변형규공은 소작농에게 덕을 항상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재해를 입게 되면 소작료를 아예 탕감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길흉사가 있으면 후한 부조를 하는 등 적선 공덕이 남달았으므로 여러 마을 사람들이 송덕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의령 변형규공 시혜비각(宜寧 卞炯圭公 施惠碑閣)은 변동규의 시혜를 기념하기 위해 1920년도에 건립된 정려비각이다. 변형규는 승정원 좌부승지를 역임하였고, 병자 대흉년(1916)에 빈민구제에 전력하여 지방(의령, 창녕)에서 송덕비를 건립해 덕행을 칭송하였으며, 후손의 귀감이 된인물이다.


비각은 낙동강의 좌측에 있는 정곡리에 있는데 구릉능선부에 남동향하고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중앙에 시혜비를 놓고 정면에는 꽃살창을 두고 삼면에는 흙벽을 설치하였다. 공포양식은 외4출목(出目) 다포식이며 공포는 연꽃 문양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단청이 시문(施紋)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건축형식은 1910년도에 건립된 중동리 충의각(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22호)과 유사하다. 정면에 1칸 규모의 출입문을 두고 주변에 토담을 둘러 공간을 구획하였다.
변형공규 시혜비각은 2010년 12월 9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 52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자연해설판/풍영정사(정곡리 1160)

정곡마을
풍영정사(정곡리 1160)

동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으며, 동네 뒤로는 매봉산, 학구봉이 감싸고 있는 안산격인 새집봉이 지기를 받치고 있다. 동네는 골땀(골안땀), 웃땀, 아랫땀세뜸으로 옛적엔 대동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큰늪, 작은늪으로 부르긴 하지만 원래는 엄청 큰 늪이었다. 동네 들머리에 정자나무도 좋거니와 누와대가 있는데 풍영대요 풍영정사다. 향사 유림들이 자주 모여서 시회도 열었던 곳이라 한다. <출처 : 의령군 낙서면>
<“풍영대”는 삼거리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데, 옛날엔 이곳 앞에는 늪과 같은 못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유림들이 여기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항상 유림들이 자주 모여서 시화도 열었던 곳이라고 한다.


정자나무 새미(정곡리 81-12) | 연화동권역 6번

정곡마을에는 
가시연자생지, 정자나무 새미, 풍영정사, 송덕비가 있습니다. 

정곡마을은 마을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옛날에는 우물이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지하수가 풍부하여 농사가 잘된다고 합니다.

옛 지명이 <우무실>, <우무동> 인데 우물(샘.새미)이란 말의 받침소리 리을(ㄹ)이 탈락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정자나무 새미>가 유명합니다. 지금은 정자 나무가 없어졌지만 사시사철 마르지도 않거니와 수량도 많아서 동네 앞들 수십 마지기 논물도 해결했다고 합니다.


정자나무 새미 | 안내판 6번





가시연자생습지(정곡리 1034) | 연화동 권역 5번



2012년 의령군 낙서면 정곡마을 6,000 여 ㎡의 유수지에서 멸종위기종 2급인 가시연꽃 자생지가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가시연꽃은 지름이 10cm ~ 1m의 다양한 크기로 60~70여 송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20여 년 전에 가시연꽃이 있었으나, 멸종했다가 자연생태계가 되살아나면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정곡마을은 소중한 자연유산을 보호하고 가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가시연꽃은 가시연꽃은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 남부 지방에서 서식하고 있습니다. 잎의 지름이 약 20~120cm 정도이지만 200cm에 달하는 가시연꽃도 있습니다. 국내에서 자생하는 식물중에 가장 큰 잎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가시연꽃 서식지는 청정지역의 상징으로, 학생들에겐 자연 생태 체험장으로, 그리고 사진 작가 들에겐 자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으로 잘 가꾼다면 마을의 상징이 될것입니다. 


가시연 자생습지 | 5번 안내판
  




가시연꽃은 산림청이 지정한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 217 종 가운데 보존우선순위 1순위에 해당되는 매우 희귀한 종이며 환경부에서 지정한 특정야생동식물로도 포함되어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종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서도 이 종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여름, 7~8월에 가시 돋친 꽃자루 끝에 1개의 자줏빛 꽃이 피고 열매는 겉에 가시가 있으며 씨는 둥글고 열매껍질은 검은색이다.





22일 의령군 낙서면 정곡마을의 유수지에서 발견된 야생동식물 멸종위기종 2급인 가시연꽃 자생지. 연합뉴스

의령군에서 야생동식물 멸종위기종 2급인 가시연꽃 자생지가 발견됐다.


의령군은 최근 낙서면 정곡마을 6000여 ㎡의 유수지에서 가시연꽃 자생지를 마을 주민들이 발견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유수지에서는 가시연꽃이 자생하다가 20여년 전 사라졌으나 이번에 다시 자생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군은 설명했다. 이번에 발견된 가시연꽃은 지름 10㎝~1m의 다양한 크기로 60~70여 송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가시연꽃이 다시 핀 것은 자연생태계가 되살아나는 징조라며 반기고 있다.



김영곤 낙서면장은 "가시연꽃 자생지가 다시 확인된 만큼 유수지 주변을 정비하고 가시연꽃을 잘 보존해 생태학습탐방지로 보존하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가시연꽃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인도 등지에 자생하는 미나리아재목과에 속하는 속씨식물로 일명 '개연'이라고도 한다.



전주, 익산, 대구, 나주 등 주로 서해안의 못에서 자생했으나 수질오염으로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